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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31 연극 '오펀스'

20190831 오후 7시 아트원씨어터1관 김뢰하(해롤드), 박정복(트릿), 김바다(필립) 


20190831 오후 7시 아트원씨어터1관

김뢰하(해롤드), 박정복(트릿), 김바다(필립)



2017년의 감동을 다시 느끼게 해준 작품


끈을 멜 필요가 없는 로퍼, 어깨를 주물러 주는 격려, 지도, 길을 잃지 않는 법,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 이미 봐야할 것을 보았다는 것의 의미.. 등 주옥같은 대사들이 가득한 연극이다.

무엇보다 진짜 어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Orphans : 고아들, 이 극은 세 명의 고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용 스포일러 있습니다.)




김뢰하 해롤드는 마지막 순간, 트릿을 보며 "괜찮아, 넌 이미 봐야할 것을 봤어." 라고 이야기하고 숨을 거둔다.

2017년 박지일 해롤드에게서는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혹시나 해서 영어대본집도 보았는데 역시나 트릿에게 하는 그 말은 없었다.

(그 직전, 두 형제에게 자신의 고아원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김뢰하 배우의 해석을 통해 나온 대사였던 거 같은데.. 그 대사가 왜 그리도 마음을 울리는지..



끈을 멜 필요가 없는 로퍼

운동화 끈을 멜줄 모른다는 필립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끈이 필요없는 로퍼 이야기를 해준다.

(후에.. 필립은 다시 운동화를 신었고 트릿은 그 운동화의 끈을 메어준다.)



앵벌이키즈 Dead End Kids

극 내내 앵벌이키즈가 뭘까 궁금했는데 1930년대 뉴욕 거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룬 영화라고 한다.

(이 작품은 연극으로 먼저 나왔었고 그 이후 영화화 되었다고 한다.)


해롤드는 트릿을 향해 계속 앵벌이키즈라고 부른다. (필립에게는 그러지 않았던 거 같다.)

부모, 보호자없이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트릿의 모습에서 앵벌이키즈들의 모습을 보았던 걸까?

왜 해롤드는 그 거칠고 폭력적인 트릿을 계속 감싸고 격려해 주려고 했을까..?

아마도 부모없이 자신과 동생을 지키고자 자신이 아는 모든 방법으로 살아 온 트릿의 인생을 공감하고 감싸주고 싶었던 거 같다.

트릿이 아는 방법이라고는 폭력과 도둑질과 동생을 세상과 격리시켜 가두어 두는 것 뿐이었다.



우리(고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가 아니었어. 격려였어..

해롤드는 트릿, 필립 형제를 본 순간,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다.

제대로 된 어른의 격려, 그리고 위로, 안내..

고아로 자란 해롤드만이 바로 알 수 있는 것들..

격려받기를 계속 거부했던 트릿도 실제로는 너무나 그 격려를 받고 싶었다는 것을 마지막에야 고백한다.

그 마지막 격려가 김뢰하 배우의 말.. "너는 봐야할 것을 봤어.."인 것 같았다.



지도, 길을 잃지 않는 법

형 트릿의 두려움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했던 필립은 해롤드의 도움(지도)을 받아 외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홀로 지도를 보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필립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해롤드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ㅜㅜ)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은 것이다.


사실.. 살다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필립은 그저 호기심과 기쁨과 아름다운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만 형 트릿이 걱정하고 경험한 것처럼 끔찍하고 위험한 현실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현실은 결국 필립이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 진짜 세상이고 이제 필립은 발걸음을 뗀 것이다.


그래도 자기가 처음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길을 잃어 혼란스러울 때, 필립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해롤드는 자신의 고아원 친구 이야기를 해준다.

같이 신문팔이를 하던 친구는 신문 장사가 너무 잘 되서, 그 추운 겨울 바람에 가슴과 등을 덮어 자신을 보호해 줄 신문까지 팔아버려서 결국 폐렴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 눈 앞의 이익 때문에 꼭 필요한 것, 결코 포기해선 안되는 것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괜찮아, 우린 이미 봐야할 것을 봤으니까..

괜찮아, 넌 이미 봐야할 것을 봤어..

김뢰하 해롤드의 마지막 말..

해롤드는 잘 표현하지 않았지만 트릿에 대해 깊은 연민과 사랑을 가졌던 거 같다.

해롤드가 트릿을 앵벌이키즈라 부를 때, 트릿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 온 자신의 삶을 보았던 거 같다.


한치 앞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어린애처럼 터뜨리고 분노하는 트릿.

그런 트릿에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롤드는 최고의 어른, 격려자, 보호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트릿이 살아갈 때, 해롤드의 가르침은 평생 그를 제대로 된 사람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며, 자기의 감정,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어른으로..


해롤드가 죽은 후, 필립은 끈풀린 운동화를 다시 신고, 트릿은 운동화끈을 메어주며 서로를 위로한다.

두 형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지금과 다를 것은 명확하다.

이제 필립도 어린애가 아니고 형 트릿을 위로하고 감쌀 수 있는 동생이 되었으니까..

결국 험한 세상 함께 걸어가는 길동무가 된 것이다.




2017년 김바다배우의 필립을 보고 훅 반했었는데, 여전히 필립에 잘 어울린다. 앵벌이키즈 춤추는 것이 참 귀엽다. 

1부 공연 내내 날라다니는 데,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


박정복배우는 여러 번 연극에서 보았던 배우였다.

가끔 감정이 너무 확 몰입하는 것 같아 조금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거리의 앵벌이키즈 트릿 그 자체였다. 좋은 연기 감사해요~


김뢰하배우님은 영화, TV를 통해 꽤 봤던 분인데.. 처음엔 대사를 좀 잊어 버리셨나.. 부자연스러울 때가 있었다.(극 내내 해롤드의 대사는 진짜 많다.) 그러나 역시 베테랑 배우시라 극의 분위기를 너무 잘 이끌어 주셨고 무엇보다 마지막 말.. 김뢰하배우의 해석에서 나온 것 같은 트릿에게 한 그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괜찮아, 넌 이미 봐야할 것을 봤으니까.."


내 아이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봐야할 것을 보여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