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9일 저녁 7시 / 한전아트센터
'영웅본색'이라..
중학생때쯤 엄청난 유행을 했던 영화였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검정색 선글라스와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쌍권총을 발사하는 주윤발이 대표 이미지였었다.
얼마 전 방영한 '응답하라 1988'에서도 영화 '영웅본색'에 푹 빠진 친구들의 모습이 나올 정도로 그 당시 화제의 영화였다.
그런데 그 영화가 뮤지컬로 나온다..? 궁금했다.
그 동안 왕용범 연출 뮤지컬의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에 더 기대가 되기도 했고 유튜브에서 임태경씨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니그가 연기하는 자호가 보고 싶어 무작정 표를 예매하고 양재로 향했다.
분명 노래를 듣는데 이야기하고 속삭이는 듯한 느낌은 홍광호배우 이후로 오랫만이었다.
홍광호배우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를 듣고 홀린 듯 '노트르담 드 파리'를 예매했었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무대가 엄청 화려했다.
처음 입장했을 때 LED로 만들어 낸 화면이라지만 정말 강물이 출렁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중년 이상 부부 관객들이 많았다.
영화 '영웅본색'을 기억하고 찾은 이들이 많았던 거 같다.
주연인 임태경, 한지상, 최대철 모두 처음 뮤지컬로 접한 배우들이었다.
한지상배우 노래 잘 하는 것은 잘 알았지만 최대철배우는 정말 예상외였다.
연기도 너무 잘하는 배우인데 노래까지 이렇게 잘할 줄이야~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반면에.. 기대했던 임태경배우의 노래는 너무나 훌륭했지만(정말 좋았다.) 연기는 평면적으로 느껴져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가장 기억된 남은 넘버는 최대철 마크가 정말 처절하게 부른 'Still Alive' 였다.
그 때는 멋있게만 보였던 주윤발..
그런데.. 이렇게 나이들어 다시 본 그의 모습은 자라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안쓰러운 모습이었다.(영화를 다시 보면 느낌이 다를 수도 있지만)
마크는 배신당해 감옥에 간 큰형님 '송자호'를 위해 홀로 복수에 나섰다가 다리를 다친다.
더 이상 조직에서 쓸모없어져 버린 그는 부하였던 아강에게 머리를 숙이고 온갖 멸시를 받으면서도 자호를 기다린다.
그는 자호와 함께 옛날의 영광(그래봤자 범죄다. 조직폭력, 위조지폐, 살인)을 찾고 싶어하지만 감옥에서 출소한 자호는 더 이상 어둠의 길을 걷고 싶어하지 않고 형사이자 동생인 자걸에게 떳떳한 형이 되고 싶어한다.
(자호 때문에 아버지가 살해당한 거라 동생 자걸은 형을 용서할 수가 없다. 형 자호는 이제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지만 자걸은 믿지 않는다. ㅜㅜ)
자호와 자걸 형제를 도와준 마크는 자걸이 경찰이라는 것이 들통나 아강에게 죽도록 폭행을 당하고 송장처럼 버려진다.
마크는 다시 자호에게 옛날처럼 함께 하기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마크는 이 노래를 부르며 홀로 위조지폐 공장을 급습하여 위조지폐 원본 테이프를 탈취한다.
(영화 영웅본색의 1, 2가 합쳐져 있다. 처음엔 "응?" 했지만 잘 이해가 되었다.)
Still Alive
미처 몰랐어. 내가 살던 홍콩의 밤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저기 수많은 불빛, 단 하나의 불빛도 날 위해 빛나지 않아.
날 동정하지마. 이건 눈물이 아냐.
평생 어둠 속에 살지는 않겠어.
짓밟히지 않아.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 올거야.
세상에 보여주겠어.
내 심장은 아직 뛰고 있어
화약 냄새가 난 아직 좋아
다리 하나쯤은 없어도 괜찮아.
이런 것 따위가 나를 판단하고 정의할순 없어.
목숨을 걸고서 방아쇠를 당겨
누가 나를 보고 이제는 끝났다 말할 수 있는가!
난 아직 시뻘건 핏물이 요동치고 있어!
누가 나를 보고 이제는 끝났다 말할 수 있는가 그 누가 날!
혼자가 되어서도 친구가 떠난대도 배신을 당했어도 멸시를 받는대도.
평생을 도망쳐도 갈곳이 없다해도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혼자가 되어서도 친구가 떠난대도 배신을 당했어도 멸시를 받는대도
평생을 도망쳐도 갈곳이 없다해도 나는 괜찮아, 어짜피 난 혼자야!
(이 때, 마크가 죽을 위기에 처한 순간, 자호가 나타나 그를 살린다.)
이게 사는 건가? 정말 숨을 쉬는 것일까?
가슴이 답답했었어.
이렇게 기쁜 거였나, 반가운 것이었던가!
친구를 만나는 게, 심장이 뛰고 웃음이 피어나. 이제 알았어! 난 아직 살아있어!
수많은 화려한 홍콩의 불빛 속에서 마크가 안심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대상은 형제같은 자호 뿐이었다.
그런 자호가 감옥에 가고나니 마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자호를 기다리며 극심한 외로움과 멸시를 견디고 있었다.
오랫동안 범죄조직에 있으면서 마크는 그 외의 세상은 알지 못했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직 그 옛날의 화려한 명성과 형제라고 믿는 조직의 관계 속에서만 찾으려 했다.
그런 마크에게 달라진 송자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세상 외엔 다른 세상, 다른 평범한 삶을 알지 못했던 마크..
그 옛날 화려한 범죄자의 삶을 다시 기대하며 헛된 꿈을 품고 사는 마크가 너무 안쓰러웠다.
시야를 넓게 가지는 것.. 지금같이 복잡한 세상에선 너무 중요한 것 같다.
'통섭', '융합' 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누구도 평생직장을 장담할 수 없고 또 AI가 점점 발달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직업, 삶의 모습은 예측조차 하기 어렵다.
그 변화를 받아 들이고 어떻게 적응해서 살아갈까..? 우리 아이들은..?
그리고 인생에서 맞이할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일어날 수 있는 시야가 있을까?
정말 재미있게 본 뮤지컬이지만.. 마크의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견숙' 역할 문성혁배우의 'Stnad Up!'
자신도 전과자, 쟤도 전과자, 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에 다른 전과자들을 거두어 함께 살아간다.
진짜 멋졌다. 그들이 다시 범죄에 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보호하는 '견숙'은 그들의 큰 형이었고 커다란 산 이었다.
그의 'Stnad Up!'은 최고였다.
장국영.. 그 당시 내겐 큰 울림을 준 가수(배우)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주크박스같은 이 뮤지컬을 본 후, 그의 음성으로 된 원곡들을 찾아 들었다.
아.. 그의 거짓말 같은 죽음 이후,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놀라고 애도했는지.. 그 느낌을 알 거 같다.
그리고 오우삼 감독을 생각나게 하는 하얀 비둘기 ㅋㅋ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
오래 전 추억을 소환할 수 있었고 또 좋은 배우들의 멋진 목소리와 연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전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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