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트라우마의 재발견
2장 마음과 뇌의 이해, 그 혁신적 변화
20여년 전, 약대를 졸업하고 첫 직장은 대학병원 약제과였습니다.
마치 공장과도 같은 병원 조제실에 사탕같이 알록달록 예쁜 약들이 가득했습니다.
첫 3개월간, 매일 약 1,000여종의 약물을 공부하고 시험을 보며 익혔습니다.
그 때 느낀 감정은.. 이 약들이 있으면 어떤 병이든 치료되겠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생각은 10년 후, 완전히 깨어졌지만요..
이번 장에서는 트라우마,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 치료에 약물 치료가 등장하면서 얼마나 획기적 변화를 겪었는지.. 하지만 그 한계가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1960년대, 70년대의 정신의학은 환자의 증상 완화, 또는 억제에만 신경을 쏟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그런 정신질환을 갖게 된 원인,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에게 질문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환자들이 이야기하는 환각은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건의 파편일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당시 의사들은 환각을 정신 이상 징후로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경험한 환자들의 움직임이 굉장히 어설프고 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가 뒤집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심지어 대화할 때의 표정, 몸짓조차 부자연스럽고 딱딱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트라우마가 사람의 신체를 어떻게 억누르는지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의 이해
셈라드 교수는 확실성을 가장한 정신의학 진단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인식한 내용이 흐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셈라드 교수는 우리에게 인간이 느끼는 고통은 대부분 사랑, 그리고 상실과 관련 있으며 환자가 삶의 현실을 삶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가슴아픈 감정들을 '인정하고 경험하고, 참고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원천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하는 경험의 모든 측면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하셨다.
또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결코 나아질 수 없다는 말씀도 하셨다.
기본적인 욕구(이 책에서 셈라드 교수는 밤에 잡자리에 들 때면 아내의 엉덩이가 몸에 닿는 것을 느낄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가 채워지지 않은 사람은, 생각이 아주 고귀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업적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고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존재로 남는다.
교수님은 치유를 좌우하는 건 바로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이라고 하셨다.
즉, 자기 몸의 현재 상태를 본능적인 욕구 측면까지 모조리 인정할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 62,63쪽)
정신과 전문의 교육 중 만난 엘빈 셈라드라는 하버드대학 교수의 말입니다.
이 교수님은 환자들을 교과서나 이론에 꿰맞추어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접촉과 경험을 통해 환자들을 이해하고 치료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 정신의학 분야는 전혀 다른 길로 흘러갔습니다.
의학이 인간의 고통에 다가서는 방식은 늘 특정 시기에 활용할 수 있던 기술에 좌우되어 왔다.
분노, 성욕, 자존심, 탐욕, 욕심, 태만을 비롯해 인류가 항상 이겨내려 애써 온 문제들을 '장애'로 보고 적절한 화학 물질을 투여하면 고칠 수 있다는 새로운 견해가 등장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한 것이다. (뇌-질병 모델) (본문 63쪽)
뇌의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화학 물질 즉, 약물 투여를 최선의 선택으로 본 것입니다.
이런 결과, 현재 미국의 50만명의 아이들이 항정신병 약을 복용한다고 합니다.
약물은 아이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지만 아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들을 경험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약물을 생산하는 제약회사와 의문을 갖지 않은 의사들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저자는 트라우마 환자들의 뇌 세로토닌 수치가 낮다는 것을 알고 뇌의 세로토닌 수치를 높이는 항우울제 푸로작(플루옥세틴)을 투여하여 드라마틱한 효과를 경험하고 트라우마 환자들을 대상으로 소규모 임상시험을 합니다.
33명의 일반 환자와 31명의 참전군인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 한 결과, 일반 트라우마 환자들에겐 좋은 효과가 있었지만 참전군인 환자들에겐 거의 또는 전혀 효과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약물 치료의 한계를 알게 되고 약물 치료는 보조 요법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장에서 저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은 서로를 파괴하는 능력만큼 서로를 치유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대인 관계와 공동체 관계의 회복은 다시 행복을 찾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2. 언어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변화시키는 힘을 부여한다.
따라서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면 자신이 아는 사실을 분명하게 규정하는데 도움이 되고 공통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3. 인간은 호흡, 움직임, 접촉과 같은 기본적인 활동을 통해 몸과 뇌의 불수의 기능을 비롯한 신체의 생리적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
4.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켜 어른과 아이 모두가 안전하게 머물고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가능하다. (본문 80쪽)
저자는 인간다움의 본질을 인정하고 트라우마를 겪은 당사자를 사회 공동체 안에서 분리해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회복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년 전, 영양학 강의를 들을 때, 강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 훌륭한 건강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좋은 사람들과 기분좋은 분위기 속에서 함께 하는 조금은 건강치 않은 식단(그 당시엔 삼겹살에 소주를 말씀하신 듯)이 때론 더 좋을 수 있다. - 고요.
오늘 저자의 결론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은 스스로, 또 서로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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